그 시대, 경성거리에 있었던 모던보이
이지민 작가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를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1937년 일제 강점기의 경성에서 조선총독부의 1급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해명(박해일 분)과 그의 일본인 단짝친구 신스케(김남길 분)이 우연히 함께 놀러간 구락부에서 만난 댄서 조난실(김혜수 분)에 첫 눈에 반해 연애를 시작하고 불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입니다. 해명이 순수한 사랑의 관계라 믿고 있었던 난실과의 연애 중 그녀가 싸준 도시락으로 인해 조선총독부가 폭발하고 이후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녀를 찾아 온 경성을 뒤지던 해명은 그 과정에서 그녀의 정체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것, 알면 알 수록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른 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실의 행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받은 오해로 단짝 친구인 신스케에 의해 취조를 당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과연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이해영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했고, 거침없이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된 (식민지)조선을, 지금이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잊은 채, 아니 어쩌면 모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독립과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순간을 즐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단짝 친구인 일본인 신스케는 자신을 한없이 추궁할 수 있는 일본 경찰의 위치에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독립운동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해영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고 참아 내야만 하는 위치에 있게 됩니다. 근대 문물에 흠뻑 빠져 모르는 척 하고 싶었지만, 결국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이라는 신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지요.
조선과 일본과 서양사이
이 영화는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 OST 등 좋은 부분이 많이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았던 부분은 영화의 미술적인 부분 입니다. 비록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직접 가 본적도 없지만 근대 경성의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던보이/모던걸들의 의상에서부터 조선이지만 조선이 아닌 느낌의 경성 길거리와 조선과 일본과 서양 사이 그 어디쯤 있는 것으로 보이는 헤어와 의복 스타일을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구현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시대의 느낌이 좋아서 많은 역사 칼럼과 사진 자료 등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조선과 일본과 서양이 만나 만들어진 특별한 시대적 분위기가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직면하는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문화가 뒤엉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의 것을 목숨 걸고 지켜내기 위한 우리들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하는 한복 체험 처럼, 광화문이나 인사동 인근에서 딱 영화 모던보이 속에 나오는 의상과 같은 복장을 빌려 입고 관광하고 사진찍고 즐기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모던 걸 의상이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지는건 제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Modern Boy, 그리고 Modern Girl
모던보이/모던걸이라는 말은 192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생활양식이 자본주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근대화 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합니다. 저고리/치마가 아닌 서양식 의복을 입고, 전통적인 댕기머리가 아닌 단발머리, 올림머리 등 새로운 머리스타일과 여성의 경우 뾰족구두 남성의 경우 백구두 등 눈에 띄는 스타일로 의복을 창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1920년 이후로 모던보이/모던걸 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가 시작하고 나서 태어나서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의해 개방된 신식 문물을 받아들인 세대입니다. 그들은 나름의 모던한 생활을 누리면서 문화적으로 그 시대에 가장 트렌디함을 즐기던 사람이지만, 그러한 문화가 조선에 들어오는 과정의 사회적 모순을 외면하고 내일이 없이 오늘을 즐기는 삶을 살며 퇴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막연하게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은 아니지만, 역시 같은 조선인의 신분으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며, 지금 이 순간의 화려함만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이 모던보이/모던걸 들은 당시의 전통적인 조선의 삶의 모습들이 하나 둘 무너져 가고,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문화 양식이 물밀 듯 들어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겨난 근대적 새로운 인간상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의 사람(당시의 어른)들이 이들을 보는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고, '못된 보이'/'못된 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 였고, 일본의 조선문화 말살과 신민교육을 직간접적으로 받으며 자란 이 세대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3월도 8월도 아닌 평범한 5월이지만, 영화 <모던보이> 추천합니다.
원작인 책도 재밌게 슥- 읽혀지고, 재미있습니다. 같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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